아주현의 이름에 켜켜이 쌓인 2,000년의 뿌리, 아주동
아주동은 단순한 신도시의 이름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삼국시대 이곳은 거로현(居魯縣)으로 불리며 남동해(거제, 통영, 고성)를 굽어보던 행정의 전초였고, 신라 경덕왕 16년(757년)에 아주현(鵝州縣)으로 개칭되었으며 거제 남동부의 정치·군사 중심지 역할을 수행하였다.
아주동 고분군에서 청동기 시대 고인돌 17기와 무문토기, 삼국시대의 석실묘 30기와 유개고배 토기류가 출토되었다. 또한 아양리에서 3층 석탑 유물도 발굴되었다. 이러한 사실은 거로현, 아주현 이전부터 고대 역사와 문명이 있었음을 증명하고 있다.
2,000년 이상의 겹겹이 쌓인 세월 따라 삶이 이어진 도시, 그곳이 아주현이고 오늘날의 아주동으로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또한 고려 충렬왕 때 문신으로 여몽연합군 사신이었던 반부(潘阜)가 공로를 인정받아 기성부원군(岐城府院君)에 봉해졌고 문하시중(門下侍中)의 칭호를 받았으며 거제반씨 시조가 되었다. 훗날 26대 후손 반기문은 시조 할아버지 DNA를 이어받아서 UN 사무총장이 되었다고 회자되었다.
반부의 묘역은 국사봉 중턱에 아주 오래된 비석이 서 있고 그곳에 안장되어 있다. 이러한 기록들은 이 지역이 변방이 아니라 국가 전략과 외교가 교차한 핵심 무대였음을 말해준다.
그리고 『세종실록지리지』에 아주(鵝州)의 성씨로 신(申)·문(文)·갈(葛)·조(趙) 4성이 기록되어 있다. 아주현령을 지냈다는 황씨 조상의 전승 기록은 이 지역 공동체의 뿌리가 2천 년의 시간 속에서 형성되었음을 말해준다. 아주현은 우연히 생겨난 고을이 아니라, 긴 역사 속에 사람과 문화가 길러낸 역사도시의 원형이었다.
당등산성과 아주현성 — 바다와 내륙을 지켜낸 이중의 성곽
아주의 해안선은 한때 유려한 곡선을 그린 길다란 백사장, 뒤편 언덕은 해송 군락이 어우러져 있는 아름다운 해변이었다. 그 언덕 위에 당등산이 솟아 있었고 삼국시대의 당등산성이 이 산 위에 위치하였다.
아주현성은 국사봉 산자락에 터전을 잡아서 이 두 성이 아주현을 지켜내는 중심 역할을 감당한 것이다. 삼국시대 축성된 당등산성은 남동해를 굽어보며 왜구를 탐지하고 차단하던 해상 제1방어선이었고, 산자락 평지의 아주현성은 국사봉 아래 내곡(배골, 성안골) 일대에 축성되어 행정과 생활, 군사의 중심지가 되었다.
이곳은 넓은 들판과 풍부한 하천 수량으로 이 터전이 오랜 시간 공동체를 먹여 살린 곡창지였음을 알 수 있었으며, 아주현의 지세, 지형 자체가 “왜 이곳이 중심이 되었는가”를 조용히 설명하고 있다.
1919년 아주장터 — 장날에 역사적인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1919년 4월 3일, 아주장터에 1,000명의 군중이 태극기를 치켜들고 “대한독립 만세”를 외쳤다. 윤택근·주종찬·이주근·윤사인을 비롯한 청년·농민·상인들은 체포와 고문, 실형과 옥고를 각오하고도 물러서지 않았다.
만세운동으로 주동자들은 고문과 재판을 받으며 혹독한 감옥살이를 하였고, 평생 감시와 불이익 속에서 힘든 생활을 살아내어야 했다. 그러나 아주에서 피어난 불꽃은 꺼지지 않았다. 연초, 거제, 둔덕, 하청으로 이어지며 거제도 항일정신의 만세운동 기폭제가 되었다.
이 사건은 거제도 항일운동을 넘어서서, 아주가 간직했던 민족정신과 구국의 일념을 일사각오로 선포한 고귀한 역사로 남겨졌다.
사라진 해안선 — 복구할 수 없다면 재생공간으로 되살려야 한다
아양해변의 길다란 백사장과 수려한 해송 군락, 따뜻한 해변의 곡선은 조선소 매립부지로 모두 상실되었다. 오늘의 한화오션의 자리는 그 옛 해안선 위에 서 있다.
이제는 물리적 복원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은 어쩔 수 없지만, 그렇다고 기억까지 지워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되돌릴 수 없는 자연이라면, 가상공간으로 복원하는 실행으로 나아가야 한다. 상실의 상처를 남기는 것이 아니라, 역사의 자산으로 탈바꿈시켜야 하는 아주동의 과제가 되었다.
서문·남문 권역의 재탄생 — 도시의 얼굴에 ‘고을의 품격’을 세우다
한화오션 서문, 남문 일대는 단순한 한화오션의 정문이 아니라 천 년 도시의 품격을 드러내는 역사의 무대가 될 수 있다.
거로현에서 아주현으로 이어진 변천, 반부(기성부원군)의 외교 서사, 고분군과 3층 석탑, 토성 집단의 뿌리, 1919년 만세운동의 기억을 서문·남문 보행축과 광장에 담아낼 수 있다면 출근길과 지나는 길들이 역사를 밟는 길이 되고 도시는 일상의 박물관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요코스카 군항도시와 수원 행궁의 사례는 역사의 품격이 도시 이미지를 바꿀 수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아주동도 그 뒤를 잇는 새로운 품격도시가 될 수 있다.
남문 앞 건너편 10만 평 — 아주현을 눈길 앞에 세우는 야외 역사도시 부지로
남문 도로 건너편은 숲과 전이 펼쳐진 약 10만 평의 평탄지가 있다. 여기는 아주현 원형을 축소하여 되살릴 수 있는 귀중한 땅이다.
이곳에 당등산, 당등산성, 아주현성을 세우고 정비된 고분군과 유물을 이전한다면 어린이·청소년·시민·관광객이 함께 걸으며 답사하는 야외 역사관광 품격도시를 탄생시킬 수 있다.
덴마크 오덴세, 영국 그리니치, 공주 웅진의 사례가 보여주듯 체험형 역사도시는 교육과 관광, 지역경제를 함께 발전시킨다. 아주 역시 그 가능성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
디지털 가상복원관 — 상실된 아양해변을 다시 걷는 기술
실내 디지털 역사관은 시간 전체를 복원하는 공간이 될 수 있다. AR·VR 기반으로 아양해변의 수려한 백사장과 포구, 해송 군락을 되살리고, 당등산성의 해상 방어, 아주현성의 생활 구조, 1919년 만세운동의 거리까지 체험할 수 있다면 천 년의 도시는 입체적 서사로 다시 살아나게 될 것이다.
싱가포르 포트 캐닝 힐, 히로사키 성 XR 교육, 경주의 디지털 복원 사례는 되돌릴 수 없는 유산들이 문화관광의 자산이 될 수 있음을 말해준다.
아주동 미래는 젊은 동민과 한화오션의 공진화 전략 실행에 담겨 있다
아주현 역사와 조선산업, 교육과 관광, 사람과 기술이 연결될 때 아주동은 더 이상 거제시 동 행정단위가 아니다. 천 년의 도읍이 미래 조선산업과 공진화하는 대한민국의 뉴 모델. 그 가능성의 첫 페이지가 지금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이 문장은 과거를 설명하는 기록이 아니라, 거제시, 한화오션, 우리 시민이 함께 공진화하며 써 내려갈 새로운 도시 선언이다.
이 글을 거제도 한화오션과 아주동민에게 드립니다. 다소 저의 주관적인 생각과 스토리텔링이 담겨 있음을 밝혀둡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