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고현동

고현성 의병전투의 함성, 포로수용소의 상흔에서 2030 세계 평화대행진으로

글쓴이: 前)거제시의회 7대 의장 潘大植
본문 작성일: 2025년 11월 28일

페이스북 원문에 첨부된 이미지
원문 첨부 이미지 · 반대식 페이스북

거제시 고현동은 조선시대 고정부곡(古丁部曲)이라 불린 행정단위였다. 고정부곡은 고려~조선 초기까지 부곡 제도가 유지되던 시기의 옛 지명으로, 조선 전기 지리지와 여러 향토사 기록에서 ‘고현의 옛 이름’으로 언급되어 왔다.

거제도는 고려 원종 12년(1271) 삼별초의 난과 왜구 침입으로 인해 공도정책이 실시되면서 주민과 관아가 거창 가조현과 진주 영선목으로 이주하였다. 이들은 그곳에서 150년을 지내다가 세종 4년(1422) 수월리(심포)에 목책성을 쌓아 새로운 치소를 세우며 환도하였다.

이 시기에 거제도를 떠났다가 다시 돌아온 성씨는 거제반씨(潘氏), 의령옥씨(玉氏), 영산신씨(申氏), 창원제씨(諸氏) 등이 있었고, 이들이 거제현 재건의 기반이 되었다는 기록이 세종실록지리지 거제현조에 전한다.

환도 이후 치소를 사등성으로 옮겼으나 읍성으로서의 여건이 부족해, 문종 원년(1451) 고정부곡(고현동)에 성을 쌓기 시작했다. 6읍에서 동원된 2만 명의 백성이 축성에 참여했고, 단종 원년(1453) 고현읍성이 완성되어 거제현의 행정·군사 중심지(치소)가 되었다.

임진왜란 — 옥포대승첩의 빛과 고현성 함락의 비극

선조 25년(1592) 4월 13일 임진왜란이 발발하였다. 그해 5월 7일 조선 수군은 옥포해전에서 이순신·원균 장군의 연합함대로 첫 승전을 거두었다. 그러나 왜군 3,000명은 패전 즉시 육지로 올라와 고현성을 공격하였다. 의병 200여 명과 백성들이 결사항전했으나 단 5일 만에 성은 함락되었다.

이 시기 김준민 성주는 조정 명령에 따라 관군 대부분을 이끌고 진주성 전투에 참전하여 고현성 전투는 신응수·윤영상·김희진 등의 의병장과 백성들만이 맞서 싸운 전투가 되었다. 이 싸움에서 수많은 인명이 희생되었고, 고현성은 왜군에게 빼앗겼다.

그러나 의병들과 백성들은 좌절하지 않았다. 다시 의병을 규합하고 일으켜 세워서 연초 중리들판(밀바대들), 하청장터 등지에서 저항을 이어갔다. 이 항전과 불굴의 정신은 ‘고현성전투 의병제’로 부활되어야 하는 역사의 길목에 서 있다.

6·25전쟁 — 포로수용소 설치와 소개령, 공동체 붕괴

근현대 고현 주변의 가장 큰 상흔은 6·25전쟁 당시 국제연합군 포로수용소 설치였다. 17만 명에 달하는 북한·중공군 포로가 수용되면서 고현 일대 360만 평의 가옥과 토지는 국제외교의 각축장이자 전략 요충지로 변했다.

문제는 오늘날의 고현동·수양동·상문동·장평동 지역 주민들에게 내려진 소개령이었다. 군사작전상 필요하다는 명목으로 360만 평의 가옥·논밭이 몰수되고 주민들은 강제 이주를 겪었다. 전쟁 후 귀환한 주민들이 마주한 것은 폐허와 황량한 들판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절망을 딛고 다시 일어섰다. 신봉근·유상언 등 지역 지도자들은 주민을 모아 논밭을 복구하고 공동체를 재건하며 고현 발전의 초석을 놓았다. 오늘의 고현 지역은 그들의 헌신으로 부흥·발전을 다져왔다.

거제군 복군과 군청 유치 — 고현동이 중심이 된 결정적 분기점

1952년 12월 14일 전쟁 중임에도 대통령령 제271호로 거제군 복군설치법을 공표하였다. 이후 군청 유치를 둘러싸고 장승포읍·거제면·고현동 간 치열한 경쟁이 벌어졌으나, 역사성과 지리적 중심성, 포로수용소 복구의 상징성이 종합 고려되어 고현동으로 확정되었다.

이 결정은 고현동이 거제의 행정 중심지로 자리 잡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고, 이후 고현 주변 일대는 새로운 군청 시설을 기반으로 도시 기능을 복원하며 중심지 역할을 이어갔다.

문화재 발굴 — 고현의 역사적 실체가 되살아나다

최근 고현동 청사부지(최초 군청터) 문화재 발굴에서는 조선~근현대에 걸친 다층의 유적이 발견되었다.
● 1453년 축성된 고현읍성의 기단성벽
● 1950년 포로수용소 경비 막사·집무실·부대시설
● 조선 및 근대의 행정·군사시설 흔적이 발굴되었다.

지난 2005년에도 고현교회 부근 건설현장에서 고현성 남문 성벽·옹성·해자가 원형대로 확인되었으나, 안타깝게도 보존되지 못하고 깡그리 묻혀 버렸다. 이번 발굴은 그 아쉬움을 딛고 고현의 역사적 실체를 되살릴 절호의 기회로 다가왔다.

나아가서 고현 유적박물관 건립, 고현성 임란전투 역사공원 조성, 포로수용소 역사 인권·평화 교육관 건립은 거제시와 지역사회가 반드시 추진해야 할 역사적인 필수 과제가 되었다.

거제 고현만의 생활사 — 어업·상업·여객의 시대

고현만은 거제 바다 식량의 보고였다. 연초천·고현천·서문천·장평천 하구의 거제도 최대 갯벌은 해산물의 보고였고, 고현서문·수월제산 부두는 생활물류의 거점이었다.

고현–마산–부산을 오가던 진해호·창용호·영운호 여객선은 당시 시민들의 일상과 추억이었다. 배를 타고 장 보러 다니던 삶, 갯벌의 아낙네들, 부두의 분주한 어업 풍경…. 이것은 고현 지역 생활문화이자 주민 정체성의 일부가 되었다.

고현동 정체성 재정립 — 역사·평화·미래가 공진화하는 도시

고현동의 정체성은 세 가지로 요약된다.
의병의 도시 — 고현성 임란전투 항전의 역사
상흔의 도시 — 포로수용소가 남겨놓은 인권·포용·평화의 가치
재건의 도시 — 주민의 힘으로 폐허가 된 도시를 일으켜 세운 회복과 복원의 역사

이 세 가지 축이 결합되면, 고현동은 단순한 도심이 아니라 “역사·평화·미래 산업이 공진화하는 특례도시”라는 비전을 갖게 된다.

세계 평화도시 고현동 — 2030 세계평화대행진으로

고현동의 질문은 분명하다. “과거의 상흔을 어떻게 미래의 평화로 전환할 것인가?” 그 해답은 역사 속에 있다.
● 의병의 호국정신
● 포로수용소의 인권·평화 가치
● 재건·회복의 공동체정신

이 가치들을 하나로 모을 때, 고현동은 UN과 함께 가는 세계 평화도시가 된다. 따라서 고현동은 다음의 7대 미래도시전략으로 나아가야 한다.

1. 고현성 전투 의병제 부활(전국 최초 의병)
2. 포로수용소 UN 세계평화대행진 페스티벌(7일간)
3. 고현 유적박물관 건립(현 발굴 부지)
4. 문동폭포–고현천을 잇는 수변 르네상스: 평화·역사·관광 통합전략
5. 중매산 시민건강 힐링 대공원(10만 평)
6. 독봉산 가족 대공원(고현천 수변 연계)
7. 고현만 매립부지 국제 컨벤션센터 건립(거제시 부지 1만 평)

이 모든 과정은 개발이 아니라 역사에 기반한 품격 있는 도시 재창조임을 증명할 것이다.

맺음말

고현동의 역사는 전쟁과 피난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그 고난은 좌절이 아니라 재건과 회복, 도약의 기반이 되었다. 고현성 의병전투의 함성, 포로수용소의 상흔에서 UN 세계평화대행진으로! 이 문장은 과거를 기리는 동시에 미래를 여는 선언이다.

고현동은 더 이상 단순한 지역이 아니라, 대한민국·UN이 함께 간직해야 될 평화·인권·역사의 도시이며 세계와 소통할 준비가 되어 있는 곳이다. 이제 거제시 고현동은 다시 뛰어야 한다. 고난의 역사를 넘어, 후손에게 물려줄 세계평화 미래 도시로 나아가야 한다.

페이스북 원문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