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능포동

능포의 바다는 길을 잃지 않는다 — 양지암축제가 열어가는 능포의 새로운 이야기

글쓴이: 前)거제시의회 7대 의장 潘大植
본문 작성일: 2025년 12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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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포라는 이름, 바람처럼 흘러온 이야기

능포라는 이름은 처음부터 아름다웠다. 구릉 아래 포구가 펼쳐진 모양을 닮았다 하여 ‘능개(菱介)’라 불렸고, 마름풀이 잔잔한 물결 위에 드리워지면 ‘능포(菱浦)’라는 한자 이름이 붙었다.

이 작은 포구에서 사람들은 바람을 읽고, 파도를 헤아리며 살아왔다. 영조 45년(1769), 능포와 옥명은 이미 방리 개편 과정에서 중요한 지역으로 기록되었고, 바다 건너 통영과 쓰시마를 오가는 외교무역선과 왜선은 반드시 이곳 능포 앞바다를 거쳐서 지나갔다. 그만큼 능포는 남해바다의 길목이었으며, 역사의 중요한 통로이기도 하였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조선 말엽, 능포대구어장은 의친왕궁 소속이 되어 어민들의 생계를 책임졌고, 경술국치 이후엔 이왕가 소유로 넘어가 일본 상인에게 대부되면서 많은 변화가 시작되었다. 이때부터 능포의 바다는 단순한 어장 이상의 의미를 갖게 되었다. 그 바다는, 말하자면 사람들의 희망과 절망이 뒤섞여 흘러가는 또 하나의 강물이 되었다.

능포의 바다, 파도처럼 스며든 삶의 장면들

그러던 어느 날, 능포의 삶은 또 한 번 크게 흔들린다. 일제강점기, ‘조선의 수산왕’이라 불리던 가이시 겐타로가 양지암과 망산 일대를 대부받아 전쟁자원으로 활용하면서 능포의 지형과 생업은 또 다른 국면을 맞이했다.

그러나 능포 사람들은 늘 그랬듯 바닷바람 사이에서 길을 찾았다. 어장을 지키고, 포구를 닦고, 집을 옮기고, 다시 일어섰다. 능포의 바다는 그렇게 사람을 받아주고, 보내고, 다시 불러들이며 시대를 견뎌냈다.

능포의 이러한 삶의 결은 옥수(玉水)와 옥명(玉明)이라는 오래된 지명에서도 확인된다. 두 마을 이름은 단순한 생활지명이 아니라, 영조 45년 방리개편의 공식 기록에 등장하는 능포의 핵심 지역이었다.

옥수는 망산 자락에서 흘러내리던 맑은 샘물에서 비롯된 이름으로, 마을 사람들은 이 물을 삶의 기반으로 삼으며 세대를 이어왔다.

옥명은 들판에 내려앉는 햇빛이 옥빛처럼 반사되었다고 하여 붙은 이름으로, 능포로 드나드는 길목과 생활권의 중심 역할을 했다.

옥수와 옥명을 이었던 옛 고갯길—옥수고개와 옥명재는 포구와 장터를 잇고, 마을과 마을을 연결하며 능포 사람들의 생업과 하루의 리듬이 오가던 길이었다.

1973년, 조선소 시대의 시작

1973년, 조선소가 들어오면서 능포의 모습은 더욱 역동적으로 변했다. 아양·아주 주민들이 이주하고, 골목과 능선의 길은 다시 새롭게 얽히며 능포동은 산업도시와 전통마을의 성격을 함께 품는 독특한 공간으로 바뀌었다. 1989년에는 느태마을까지 능포동으로 편입되며 지금의 모습이 자리 잡았다.

이렇게 보면 능포는 단순한 ‘마을’이 아니라 수백 년의 물길과 발자국이 포개진 하나의 거대한 이야기책에 가깝다.

그런데 지금, 능포는 잠시 멈춰 서 있다

조선산업은 호황이라는데 능포의 골목상권은 아직도 숨을 고르고 있다. 거리의 상점들은 활기를 잃어버리고, 해양공원은 기대한 만큼 제 역할을 찾지 못한 채 머뭇거린다. 능포–양지암–해양공원으로 이어지는 아름다운 선형 경관은 어쩐 일인지 아직 하나의 이야기로 묶이지 못하고 있다.

사실 이것은 능포만의 문제는 아니다. 전국의 산업도시들이 겪는 공통의 고민이지만, 능포에서는 그 갈증이 조금 더 깊게 느껴진다. 왜냐하면 이곳에는 저력이 있고, 가능성이 있으며, 무엇보다 아름다움이 있으니까.

능포는 다시 움직여야 한다. 그리고 그 시작점은 바로 양지암축제다.

양지암축제, 능포의 옛길을 잇고 미래를 여는 축제가 되다

양지암의 등대는 오래전부터 능포의 밤낮을 밝혀왔다. 대낮에도 환한 바다를 내려다보며, 파란 하늘 아래 길을 안내하던 등대. 그러나 지금 이 등대는 더 큰 의미를 품을 때가 되었다. 단순한 항로의 불빛이 아니라 능포의 미래를 새롭게 비추는 빛이 되어야 한다.

등대 윗길로 구릉을 따라 오르면 미술·조각공원이 아름답게 펼쳐진다. 여기엔 작고 큰 금속조각, 석조상들이 바람의 결을 따라 서 있는데, 능포의 오래된 이야기들이 투영되어 그림자처럼 잔잔히 깔려 있다.

그리고 조금 더 내려가면 능포해양공원이 나타난다. 축제도 열 수 있고, 해양놀이나 문화행사를 담을 수 있는 능포의 새로운 도시광장이다.

사실 이 세 공간은 처음부터 서로 이어져 있었다. 단지 연결되는 줄기가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다.

양지암축제의 역할은 바로 여기에 있다. 등대–조각공원–바다–항구–시가지를 하나의 이야기로 엮어 능포라는 도시의 ‘서사’를 되찾아주는 일. 그리고 그 서사를 바탕으로 능포의 경제와 관광을 다시 뛰게 하는 일이다.

능포의 미래는, 이미 능포 앞에 와 있다

능포가 할 일은 거창한 도시개발이 아니다. 능포답게 변화하면 된다.

양지암 등대는 능포의 상징이 되고, 조각공원은 예술과 사람이 모이는 감성의 예술로드로 재탄생되며, 능포해양공원은 다시 ‘사람이 찾아오는 바다광장’이 되어야 한다.

이 모든 것이 연결되면 능포는 거제 동쪽해안에서 가장 가보고 싶은 길, 머물고 싶은 바다, 사진 찍고 싶은 새로움을 가진 도시가 될 수 있다.

그리고 그 변화는 결코 먼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능포의 지형이, 능포의 바다가, 능포 사람들의 기억이 그 길을 모두 품고 있기 때문이다.

능포의 바다는 오늘도 새 길을 열어간다

능포의 바다는 길을 잃지 않는다. 수백 년 전 외교무역선이 지나던 해상로드는 오늘을 살아가는 주민의 삶 속에 겹쳐지고, 능개의 옛 이름 위에 새로운 능포의 미래가 세워져야 한다.

양지암축제는 바다와 등대와 사람을 다시 불러들이고 어우러지는 축제다. 능포의 바다가 열어온 길 위에 능포의 새로운 백 년이 더 새롭게, 더 힘차게 나아가야 될 것이다.

이 글은 거제도 능포동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적어 보았습니다. 다소 저의 주관적 견해와 생각이 담겨 있음을 밝혀 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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