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현성 · 역사문화관

문화유산 뭉개는 고현동 청사 신축, 위치 변경해야 한다

2026.09.02

최근 발굴된 500년 고현성(古縣城)의 기단과 포로수용소 유적을 다시 흙으로 덮어 주차장으로 사용하고, 유구와 겹치지 않는 부지에 고현동 청사를 짓겠다는 변경안이 발표됐다.

역사유적을 외면한 거제시의 결정에 시민의 우려와 분노가 커지고 있다.

이곳은 조선시대 거제현(巨濟縣)의 읍성이었던 고현성(古縣城), 한국전쟁 당시 포로수용소의 막사와 배수로, 1956년 건립된 옛 거제군청사가 한 공간에 중첩된 중요한 문화유산이 남겨진 땅이기 때문이다.

이곳을 제대로 발굴하고 보존해 역사문화공원으로 조성한다면 거제의 역사와 정체성을 보여주는 살아 있는 교육 현장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거제시는 유적을 온전히 보존하고 활용할 방안을 찾기보다 다시 흙으로 덮어 주차장으로 사용하고, 같은 부지의 다른 공간에 청사를 세우려 한다.

유적을 흙으로 덮고 주차장으로 사용하는 것은 보존이 아니다

발굴된 유적 위에 보호층을 만들고 흙을 덮는 것은 문화유산을 보호하기 위한 기술적 방법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그 위를 주차장과 행정시설 부지로 사용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장차 복원까지 고려해 이 역사유적을 온전히 보존해야 한다.

청사가 들어서면 차량 진입로와 상하수도, 각종 기반시설이 뒤따른다. 역사 공간은 건물과 도로 사이에서 조각날 수밖에 없다.

시민이 현장에서 유적을 보고 역사를 이해할 수 없다면 살아 있는 보존이라 할 수 없다.

문화유산은 청사 한쪽의 작은 전시실에 사진과 모형으로 남겨놓는 장식물이 아니다. 발굴된 장소에서 원형과 공간의 맥락을 함께 보고 느낄 수 있어야 한다.

국가유산청 매장유산분과위원회도 거제시가 제안한 고현성 유적의 현지 보존과 포로수용소 유적의 기록 보존 방안을 부결했다.

그런데도 거제시가 국가유산청 결정의 취지를 우회하는 방식으로 건립을 계속 추진한다면, 보존이 아니라 개발을 위한 명분 쌓기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이곳은 신현읍 행정 중심지였다. 현재 위치를 고집할 이유가 없다

현 청사 부지는 과거 신현읍 시절의 행정 중심지였다.

그러나 신현읍은 2008년 7월 1일 고현동·장평동·상문동·수양동으로 분동됐다. 이후 인구 분포와 주거환경, 교통 흐름도 크게 달라졌다.

특히 중곡동에는 고현동 전체 인구의 약 40%가 거주하고 있다. 주민들은 현 청사와의 거리와 국도 14호선으로 단절된 접근성 문제를 오랫동안 제기해 왔다.

거제시도 이러한 불편을 인정해 2019년 중곡민원센터를 설치했고, 2025년에는 새로운 장소로 이전해 민원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중곡동 주민들이 인근 시유지에 행정기능 복합센터 건립을 끊임없이 요구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과거의 행정 중심이 오늘날에도 그대로 존치할 이유는 없다. 이제는 행정 기능을 분산하고, 청사는 주민 대다수가 거주하는 접근하기 편리한 생활권으로 이전해야 한다.

기존 공공시설을 연결해 커뮤니티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다

고현 중심가에는 약 218억 원이 투입된 거제리본플라자가 운영되고 있다.

리본플라자에는 작은도서관과 공동육아나눔터, 경로당, 상생협력상가, 창업·공동체 지원 공간 등 다양한 기능이 들어서 있다.

인근에는 거제도서관과 거제시청소년수련관, 고현청소년문화의집 등 교육·문화·청소년 시설도 운영되고 있다.

이처럼 다양한 공공시설이 갖춰져 있는데 또다시 대형 복합청사를 짓는 사업은 비효율적인 예산 집행의 대표적인 사례가 될 것이다.

새로운 건물을 늘리기보다 기존 시설을 유기적으로 연결하고 활용도를 높여야 한다.

인공지능 시대, 청사는 규모보다 효율이 중시되어야 한다

정부24와 온라인 민원, 무인민원발급기와 인공지능 행정 서비스가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인공지능 시대의 동 청사는 모든 기능을 한 건물에 넣은 거대한 복합시설일 필요가 없다.

주민등록·복지상담·재난대응·디지털 취약계층 지원 등 필수 대면 업무에 집중하는 효율적인 행정서비스센터로 기능하면 충분하다.

온라인으로 처리할 수 있는 업무는 온라인으로 전환하고, 고령자와 장애인 등 방문 지원이 필요한 시민에게는 찾아가는 행정을 확대해야 한다.

건물은 줄이고 서비스는 넓혀야 한다.

당초 고현동 복합커뮤니티센터는 약 258억 원을 들여 지하 2층·지상 4층, 연면적 약 8,432㎡ 규모로 계획됐다.

시민 혈세를 역사유적지 위의 대형 청사에 쏟아부어서는 안 된다.

행정 업무 공간은 대폭 줄이되 주민의 소통과 공동체 활동을 위한 공간은 충분히 확보해야 한다.

역사유적은 보존하고 청사는 과감하게 이전할 때다

고현동 신청사 건립추진위원회는 건물 하나를 짓기 위해 존재하는 조직이 아니다. 주민의 미래와 공동체의 자산을 지키기 위해 존재해야 한다.

역사유적이 발굴됐고 생활권의 중심이 이동했으며, 인공지능 시대를 맞아 행정 업무 환경도 변화하고 있다.

그런데도 이 위치에 대형 청사를 짓겠다는 주장만 되풀이한다면 추진위원회는 주민 의사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거제지역 정치인과 도·시의원들도 문화유산 앞에서 침묵해서는 안 된다.

왜 역사유적지에 청사 건립을 계속 추진하는지, 왜 분동 이후 달라진 생활권과 주민 접근성을 생각하지 않는지 진상을 조사하고 시민 앞에 답해야 한다.

해법은 분명하다.

현 청사 부지는 고현성·포로수용소·옛 거제군청사를 연결한 역사문화공원으로 전면 보존하고, 기존 석조 청사는 역사문화관으로 재생되어야 한다.

고현동 청사는 주민 접근성이 높은 새 부지로 이전하되 행정 공간은 줄이고 주민 커뮤니티 기능은 충분히 강화해야 한다.

거제시와 신청사 건립추진위원회, 도·시의원들은 역사유적지 내 청사 건립을 즉각 중단시키고 문화유산 보존에 대한 책임 있는 결단을 시민 앞에 밝혀야 한다.

동 청사 건물은 다시 지을 수 있지만, 문화유산과 역사유적은 다시 만들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글쓴이 前 거제시의회 7대 의장 반대식